Vincent van Gogh Vincent van Gogh Vincent Van Gogh
Early work (1881 - February 1888) Arles (February 1888 - May 1889) Saint-Rémy (May 1889- May 1890) Auvers-sur-Oise (May - July 1890)
 (Dutch, 1853–1890) Athough Vincent van Gogh eventually would become the most recognizable name in nineteenth century art, he didn't always seem destined for life as a painter. Indeed, it wasn't until the age of 27 when, after brief sojourns into different professions -- including those of art dealer, teacher, and lay minister -- van Gogh devoted himself to painting.
Vincent quickly developed his own style, learning by studying the Impressionists and Japanese art. In 1885 Vincent moved to his brother Theo's apartment in Paris, where he started building a career as a painter. But he earned little notice in the capital city, and, out of frustration, left Paris in 1887 for Arles, in the south of France, where he hoped to establish a "studio of the south." In Arles van Gogh moved into the Yellow House, where he worked prodigiously and for a while hosted his friend and mentor Paul Gauguin.
 Vincent van Gogh Painting Sunflowers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꽃을 그리는 고흐 Paul Gauguin Paul Gauguin
 Cypresses, 1889 사이프러스 Oil on canvas; 36 3/4 x 29 1/8 in. (93.4 x 74 cm)

Portrait of Dr gochef 의사 가셰(쉐)

(나도 가끔은 부끄러움을 탄다. 사진을 찍자고 말하면 잔뜩 긴장한다.)
나의 생일은 7월19일이다. 여느 아내들처럼 나도 생일 보름 전부터 생일노래를 불렀다. 한강과 잠실스타디움stadium이 코 앞에 닿을 듯이 보이는
30층 스카이라운지sky lounge에서 나의 가족들과 나는,
나의 생일축하를 겸한 저녁 식사시간을 가졌다.
나의 큰 아들의 애인까지 불러 앉혔기에 우리일행은 나 포함하여 5 명이다.
나는 본시 속이 좁은 자로, 축하객입장인 나의 가족까지(지나포함)나와 동일한 메뉴를 주문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축하객의 무안할까 염려하여 입 밖으로 소리내지 않았다.
나의 큰 아들과 그 아이의 애인인 지나의 합동선물은 신,구약66권의 성경이 녹음되어 있는 손바닥반만한 mp3, 나의 작은 아들은 크로키croquis 한 나의 모습을, 나의 남편은 사각 흰 봉투를 내밀었다. 위의 선물들은 생일선물로는 모두 약소하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생일날까지 쩨쩨한 나의 심성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축하객인 가족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나의 마음을 달랜 뒤 ‘몹시 흡족하다’로 바꾸었다. 그러나 바꾸자 한다고 개과천선하기는 어려운지
축하객들은 눈치채지 못했으나 섭섭함이 순간 나의 마음을 스쳐갔다.
(요한 4:5~42)
아이들은 나이만 찼지
아직은 정식 제 밥벌이를 못하는 학생신분인지라 그러하다해도, 원래 나의 남편의 손이 작은 것은 알지만, 그가 내민 달랑 흰 봉투하나에는. 나도 조금은, 놀랐나보다.
나는 받은 선물들을 펼쳐 본 뒤 고맙다고 진심으로 말하고
나의 핸드백 안에 넣었다.
나중에 집에 가서 안방 문을 닫고 다시 볼 맘이었다.
나의 남편은 꼭 초대장으로 연상되는 사각 흰 봉투를 다시 열어 보라고 재촉하였다. 나는 잠시,
봉투가 얇은데, 혹시, 수표
물론 속으로만,
생각했다.
다시 펼친 봉투 안의 카드 겉지는 좀 전에 볼 때보다 더 화려했다.
만발한 분홍하트heart 와 Happy Birthday to you영문으로 인쇄되어 있으며
반짝이까지 뿌려져 있었다. 나의 남편은 속지도 겉지 못지 않게 분홍사인펜으로 하트를 여러 개 그려 넣었고 ‘사랑한다를 5 번 반복하여 적어 두었다.
어느 무심한 사람이라도 이 카드를 본다면 큐피드가 쏜 화살을 맞은 듯이
Cupid shoots his arrow of love and hit me 감격할 것이다.
평소 가부장적인 나의 남편임을 알기에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나도 화답했다.
다시 카드를 핸드백 안에 넣으려는 나에게 나의 남편은 카드의 속지 뒷 면도 보라고말했다.
그 곳에는 알록달록한 포스트잇 post-it 12개가 나란히 나란히 붙어 있었다. 쿠폰북coupon book 청소기 1회, 설거지 1회, 주차대행 1회, 음식쓰레기 버려주기 1회 또 뽀뽀해주기(횟수 없음), 평생토록 사랑하며 살기,현금교환10만원, 그리고 주차대행 1회 등등
주의 날인 교회에서
20분 늦게 집에서 나간 날은 본당광장 한 복판에 자동차주차를 시켜야 한다.
예배마침시간을 놓치면 다음 예배가 끝날 때까지 나의 자동차는 요지부동이다.
종종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내가 섬기는 부서에서 단체문상을 간다한다. 3부예배가 끝나려면 30분이 남았다. 교회 안의 다른 부서를 섬기는 나의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유비무환
항상 자동차출납이 가능한 장소에 주차를 한다.
나->급해요. 당신 차를 타고 갈게요.
나는 서로의 자동차키를 교환하자며 선교관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나의 남편-> 아니, 그리 생각이 부족하오. 그 복판에 차를 세우니 아쉬울 때 차를 빼지 못하지,
옳은 말을 하는 나의 남편의 기세등등함에 나는 움칠하여 택시를 타고 갈까 잠시 생각하였으나,
어제 남편에게 받은 쿠폰북이 생각났다.
나-> 쿠폰사용.
양순해 진 나의 남편-> 알았소. 자동차 키와 주차대행 쿠폰도 함께 주시오.
나는 주차대행이 아니고 키 교환이라고 똑똑하게 말했다.


Walking couple 연인(detail), 1888 함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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